대한불교조계종 계룡산 신원사
 
 
작성일 : 16-09-07 13:26
계기와변화-중하주지스님 대전일보 칼럼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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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칼럼] 계기와 변화
2016-07-27 22면기사 편집 2016-07-27 05:15:04
종교칼럼


수행·정진 마음의 깨달음 노력 외면 자기가 높은것 처럼 믿고 잘난척만 자신을 되돌아보고 '진리' 깨우쳐야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생각과 경계에 부딪친다. 그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삶이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 마음을 열고 보면 힐링이 아닌 것이 없다. 이왕 태어났는데 멋있는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고마운 것을…. 저들이 있어 내가 살 수 있으니 말이다. 법정 스님의 글은 간결하면서 쉽게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원래 참선 공부만 하시던 분이라 글을 쓰지는 않으셨다. 그런데 그런 스님에게 글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법정 스님이 합천 해인사에 참배를 하고 팔만대장경이 모셔져 있는 장경각을 돌아서 나오는데 시골 아낙네 한 분이 법정 스님에게 "해인사에 유명한 팔만대장경이 있다는데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다. 법정 스님은 "여기 나무판자로 쭉 재어놓은 것이 팔만대장경입니다"라고 답했는데 이후 "아, 저 빨래판 같이 생긴 것 말입니까?"라는 아낙네의 말에 충격에 빠졌다. "저 소중한 대장경판이 저분에게는 빨래판으로 보인다니." 이후 법정 스님은 '아무리 귀중한 것이라도 그 가치를 못 알아보는 자에게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중생 속으로 들어가 알려야겠다며 참선 공부를 잠시 접어두었다. 펜을 잡은 후에는 남은 여생 동안 많은 양서를 남기고 지난 2010년에 입적했다. 부처님의 위대한 진리 말씀도 결국 우리 중생을 위한 것이다. 제도할 중생이 없다면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중생이 아프기 때문에 나도 아프다'는 유마 거사의 말처럼 중생의 병은 바로 부처의 병이 되는 것이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가 아프듯이 마지막 한 중생까지도 제도하기 위해 보살의 몸을 나누어 다겁으로 같이 윤회하면서 마지막 한 중생까지도 제도해 마치셨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난 존자가 있다. 부처님 시중을 25년간 했으며 너무 잘생겨서 여성과의 스캔들이 많은 제자 중에 한 사람이었다. 총명하고 기억력이 뛰어나서 부처님의 설법을 한번만 들으면 다 기억을 했다고 전해진다. 부처님께서 특별히 사랑했고, 그래서 부처님께 불경죄도 많았다. 부처님의 사촌동생인 제바달다가 부처님을 죽이려고 산 위에서 돌을 굴렸는데 아난이 자기만 살겠다고 피하는 바람에 부처님께서 돌 파편에 발등을 다치신 일이며, 병으로 인해 갈증이 나서 물을 달라고 하셨는데도 물을 떠다 드리지 않은 일 등 여러 일이 많았다. 그래서 많은 제자들이 미워했다. 특히 상수제일 제자 가섭 존자가 미워했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생전에 비구 수행 제자와 여러 계층의 상대로 설법하신 것을 모아 빠른 시일 내에 결집해야 할 일이 생겼다. 시일이 오래가면 잊혀지기 때문이다. 상수제일 제자를 선두로 비구 500명을 선정해 칠엽 굴속에서 결집하기 위해 모였다.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들은 아난이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데 가섭존자가 막았다.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가섭은 "부처님의 진리 말씀은 오직 많이 들은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법의 깨침이 중요한 것"이라 말했다. 사실 그동안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만 들었을 뿐이지 수행·정진을 통해 마음의 깨달음을 얻을 성불의 노력은 전혀 없었다. 부처님의 사랑만 받고 아만(我慢, 자기가 높은 것처럼 믿고 잘난 체하는 것)만 가득했던 것이다. 자기편을 들어주는 제자는 아무도 없다. 아난은 마음이 바빠졌다. 마음의 깨침을 얻어 꼭 참석하리라 마음이 급해졌다. 이후 뒷산 절벽에 한쪽 발을 들고 섰다. "내가 여기서 가섭존자가 말한 깨침을 얻지 못한다면 이 절벽에서 떨어져 죽으리라". 목숨을 걸고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의분을 품었다. 일주일 만에 진리의 법을 깨쳤다. 깨치고 보니 상수제자 가섭이 너무나 고마웠다. 하마터면 부처님을 따라다니며 듣기만 했던 지식만으로 결집할 뻔 했으나 진리에 대한 지혜(智慧)의 심안(心眼)이 열렸다. 가슴이 시원해졌다. 처음으로 법열의 맛을 보았다. 신통력으로 석굴의 문을 훼손하지 않고 들어가 결집상석에 앉았다. 사실 오백 대중은 아난이 깨달아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만약 가섭의 충격적인 질타가 없었다면 부처님의 45년간 중생 제도를 위해 설하신 진리의 법문도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중하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계룡산 신원사 주지